킵차크 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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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킵차크 칸국은 13세기 몽골 제국 분열 후 주치 울루스(주치의 왕국)로 시작하여 킵차크 초원을 중심으로 성장한 국가이다. 금장 칸국으로도 불리며, 칭기즈 칸의 손자 바투 칸에 의해 건국되었다.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몽골 제국의 통치 방식과 세금 제도를 계승하여 러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다. 14세기 후반부터 쇠퇴하여 여러 칸국으로 분열되었으며, 1502년 크림 칸국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킵차크 칸국의 유산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에 깊이 각인되었으며, 특히 러시아에 '타타르의 멍에'로 불리는 몽골 지배의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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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칸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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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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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울루그 울루스 |
일반 명칭 | 금장 칸국 |
다른 이름 | 키프차크 칸국 조치 울루스 |
상태 | 유목 제국 |
시대 | 중세 후기 |
건국 | 1225년 |
연합 | 청장 칸국과 백장 칸국의 연합 (1379년) |
해체 | 대호드로 분열 (1466년) |
주요 사건 | 우그라 강 대치 (1480년) 크림 칸국에 의한 사라이 약탈 (1502년) |
멸망 | 1502년 |
이전 국가 | 몽골 제국 쿠만-키프차크 연맹 볼가 불가리아 |
계승 국가 | 우즈베크 칸국 카심 칸국 제노바 가자리아 아스트라한 칸국 카자흐 칸국 크림 칸국 시비르 칸국 노가이 호르드 카잔 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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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사라이(서부, 이후 전체 수도) 시그나크(동부) |
공용어 | 중세 몽골어 킵차크 튀르크어 |
종교 | 텡그리교 샤머니즘 네스토리우스교 티베트 불교 (1240년대–1313년) 이슬람교 (1313년–1502년) |
정부 형태 | 반 선거 군주제, 이후 세습 군주제 |
지도자 | 조치 (초대) 오르다 칸 (백장 칸국) 바투 칸 (청장 칸국) 토크타미시 마흐무드 빈 퀴취크 (대호드) 셰이크 아흐메드 (마지막) |
지도자 직책 | 칸 |
입법부 | 쿠릴타이 |
면적 | 6,000,000 제곱킬로미터 (1310년) |
통화 | 풀 솜 디르함 |
역사적 맥락 | |
별칭 | '위대한 국가' |
다른 표기 | 알탄 오르드 (몽골어) 알틴 우르다 (타타르어) 알튼 오르다 (터키어) اولوس جوجي (페르시아어) |
시대 | 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말까지 번성 |
민족 구성 | 튀르크족, 우랄족, 사르마티아인, 스키타이인 혼합. 몽골 귀족이 소수 |
구분 | 이전의 쿠만-키프차크 연맹과 구분 |
후대의 명칭 | 러시아에서는 조치의 울루스로 불림 |
언어 상황 | |
몽골어 | 초기 공문서에 사용됨. |
킵차크 튀르크어 | 대다수 주민, 군대에서 사용, 1350년대 이전에 몽골어에서 전환 |
통치자 | |
오르다 | 1226년–1280년 |
바투 | 1242년–1255년 |
토크타미시 | 1379년–1395년 |
마흐무드 칸 | 1459년–1465년 |
셰이크 아흐마드 | 1481년–1502년 |
주요 사건 연대 | |
몽골의 루스 침공과 건국 | 1240년대 |
오르다 울루스, 바투 울루스 동맹 | 1478년 |
대호드로 붕괴 | 1466년 |
크림 칸국에 정복됨 | 1502년 |
2. 명칭
킵차크 칸국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금장 칸국(金帳汗國)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 '조로타야 오르다(Золотая Орда)'를 번역한 것으로, 튀르크어 '알탄 오르다(Altan Orda)'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르다(Orda)'는 '궁전', '천막', '본부'를 뜻하며, 칸의 천막이 칸국 전체를 상징하게 되었다. '황금'이라는 명칭은 천막의 색깔, 실제 황금 천막, 또는 칸의 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해석된다.[115][116]
1242년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바투 칸은 서방 원정을 중단하고 볼가 강 하류에 사라이를 건설하여 킵차크 칸국의 수도로 삼았다. 바투 칸은 루스 공국들을 복속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몽골 제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93]
16세기 이전에는 주치 울루스(جوجي اولوس|Ūlūs-i Jūchī|주치 울루스fa), 다슈티 킵차크(دشت قپچاق|Dasht-i-Qipchaq|다슈티 킵차크ar), 킵차크 칸국, 코마니아/쿠마니아(Comania/Cumania) 등으로 불렸다.[115][116] 주치 울루스는 몽골 제국 건국 초기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에게 분봉된 영지를 의미하며, 킵차크 초원을 중심으로 영토가 구성되었기에 '킵차크 칸국'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러시아와 페르시아 사료에서는 킵차크 칸국의 서부를 백장 칸국, 동부를 청장 칸국으로 불렀다. 반면, 티무르 제국에서는 서부를 청장 칸국, 동부를 백장 칸국으로 지칭했다. 이는 몽골인의 방위 개념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몽골은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왼쪽(동쪽)을 청색, 오른쪽(서쪽)을 백색으로 표현했다.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금장 칸국'이라는 명칭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주치 울루스' 또는 '킵차크 칸국'이라는 명칭도 사용된다.
3. 역사
블라디미르의 야로슬라프 2세, 갈리치아의 다닐, 블라디미르의 스뱌토슬라프 3세를 포함한 모든 루스의 고위 왕자들은 바투의 우월성을 인정했다. 1245년 다닐은 바투를 직접 방문하여 충성을 맹세했다. 체르니고프의 미하일은 복종을 거부하여 1246년 처형되었다.[117]
바투의 강력한 지지 아래, 뭉케가 1251년 대칸으로 즉위했다. 이리하여 바투는 뭉케와의 우정을 통해 제국의 안정성 및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몽골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베르케 칸(1258~1266)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맘루크 왕조와 동맹을 맺는 등 킵차크 칸국의 독자성을 강화했다.[96]
멩구 티무르 칸(1266~1280)은 러시아 정교회에 면세 특권을 부여하고 제노바, 베네치아와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등 통치 기반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몽골 제국 내 권력 다툼, 특히 툴루이 가문 내전과 베르케-훌라구 전쟁은 킵차크 칸국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291년 토크타가 노가이 칸을 몰아내고 칸의 자리에 올랐다.[109] 토크타는 원나라 및 일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내부적으로는 상업을 활성화하여 국가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109]
우즈베크 칸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킵차크 칸국 사회 전반에 이슬람화를 추진했다.[102] 그는 맘루크 왕조와 관계를 강화하고, 동로마 제국, 세르비아, 왈라키아 등과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했다. 또한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1세를 지원하여 러시아 내에서 모스크바의 세력 확장에 기여했는데,[101] 이반 1세는 우즈베크 칸에게 아첨하여 북동 루스 여러 공국의 세금을 거두어 제때 납부하는 책임을 맡는 대신 1328년에 블라디미르-수즈달 대공국의 자리를 얻어 모스크바 대공국을 건설했다. 우즈베크 칸 시대는 킵차크 칸국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우즈베크 칸 사후, 킵차크 칸국은 내부 권력 투쟁과 흑사병의 유행으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우즈베크 칸의 장남 티니베크는 1341년부터 1342년까지 잠시 통치하다가 동생 자니베크 칸(1342~1357)에게 칸위를 넘겨주었다.[127] 자니베크는 잠시나마 국가를 안정시켰지만, 그의 통치 기간 중반부터 시작된 1340년대의 중세 흑사병은 킵차크 칸국의 경제적 몰락에 기여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129] 1345년에 크림반도를 강타한 이 역병은 이후 호라즘(1345)과 사라이(1346)를 휩쓸었으며[129] 약 8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 전염병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무역로에 발길이 끊기자 자연스럽게 칸국의 경제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자니베크 칸은 부친의 발칸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고 그 대신 서쪽에서 팽창하는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폴란드 왕국에 맞서 모스크바 대공국을 지원했다. 그는 이들을 상대로 한 몽골-루스의 합동 군사 원정을 일으켰다. 그러나 1349년에 폴란드-헝가리 군대는 갈리치아-볼히니아를 점령하여 그들의 영향권으로 편입하였다. 이로써 루스 공국들 가운데 갈리치아-볼히니아가 처음으로 킵차크 칸국의 봉신 관계에서 이탈했다. 1352년에 자니베크는 이를 보복하기 위해 루스 동맹국들과 함께 쳐들어가 폴란드 영토 대부분과 루블린을 약탈했고, 1357년 폴란드 왕 카지미에시 3세는 몽골의 침공을 막고자 킵차크 칸국에게 항복하고 매년 공물을 바치기로 합의했다.
한편 자니베크는 동쪽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차가타이 칸국을 잠시 속국으로 만들고, 캅카스를 넘어 타브리즈를 점령함으로써 1356년에 추판 왕조의 지배를 종식시켰다. 잘라이르 왕조의 항복을 받아들인 자니베크는 '몽골 제국의 3개 울루스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다'라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브리즈에서 귀환하는 길에 자니베크는 그의 아들 베르디베크에게 암살당했으며 그 사이에 킵차크 칸국은 1357년 타브리즈를 잘라이르 군주 우웨이스 1세에게 상실하고 말았다.
자니베크 칸의 사후 킵차크 칸국은 '대혼란' 시대에 들어서며 칸위 계승 분쟁이 격화되었다. 베르디베크 역시 1359년에 형제 쿨파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암살당했다. 1년 뒤인 1360년에 쿨파의 또 다른 형제 나우루즈베크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와 그의 아들들을 모조리 참살했다. 나우루즈베크는 1361년에 샤이반의 후손인 키드르에게 찬탈당했고 키드르는 다시 그의 형제 티무르 크와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티무르 크와자는 우즈베크 칸의 후손들이 권력을 되찾기 전까지 단 5주간만 킵차크 칸국을 통치했다.
이 시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1363년 블루 워터스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킵차크 칸국의 서부를 공격하여 키이우와 포돌리아를 정복했다. 이 무렵에 권신 마마이가 발호하여 압둘라를 지원했지만, 무라드와 아지즈라는 두 명의 칸이 통치하는 사라이를 점령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압둘라가 1370년에 사망하자 마마이는 무함마드 볼라크를 꼭두각시 칸으로 즉위시켰다.
1380년 쿨리코보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의 마마이는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에게 패배하며 킵차크 칸국의 권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토크타미시 칸이 킵차크 칸국을 재통일하고 모스크바를 공격하여 루스 공국들을 다시 복속시켰지만, 티무르 제국의 침입으로 킵차크 칸국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15세기 이후 킵차크 칸국은 여러 개의 독립적인 칸국으로 분열되었다.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크림 칸국, 노가이 칸국, 시비르 칸국, 카자흐 칸국 등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1502년 크림 칸국이 사라이를 함락시키면서 킵차크 칸국(이흐 칸국)은 멸망했다.
Крымское ханство: 크림 칸국
(ocтaтoк 3олотой Орды) Большая Орда: 이흐 칸국
Казанское ханство: 카잔 칸국
Астраханское ханство: 아스트라한 칸국
Ногайская Орда: 노가이 칸국
Сибирское ханство: 시비르 칸국
Казахское ханство: 카자흐 칸국
3. 1. 기원 (1225~1241)
1227년 칭기즈 칸이 사망하기 직전, 몽골 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네 아들에게 나누어 각각 분봉했지만, 제국은 한동안 대칸 아래에서 통일된 상태를 유지했다.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는 칭기즈 칸보다 6개월 앞서 세상을 떠났으므로, 본래 주치가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던 러시아 남부 및 카자흐스탄 대부분을 포함하여 몽골인들이 정복한 최서단 영토는 주치의 장남 바투 칸이 물려받았다. 1235년 바투 칸은 수부타이와 함께 서부 지역으로 원정을 시작하여, 바슈키르인들을 정복한 후 이듬해 볼가 강 불가리아로 쳐들어갔다.[13][14] 1237년까지 오늘날 우크라이나 남부 초원지대의 대부분을 정복했고, 이 지역에 있던 많은 쿠만인 및 킵차크인들이 서쪽으로 후퇴하도록 강요했다. 1239년까지 수많은 쿠만인들이 크림 반도에서 쫓겨났으며 남은 이들은 몽골 제국의 주민 중 한 무리가 되었다.[15]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북상한 바투는 키이우 루스를 침공하여 약 3년 동안 루스 공국들을 복속시켰고, 그의 사촌들인 뭉케, 카단 오구르, 구유크는 남쪽의 알라니아를 공격했다.
쿠만족의 이주를 명분으로 삼아 몽골인들은 동유럽을 넘어 폴란드와 헝가리를 습격했고, 이는 레그니차 및 모히에서 이들에게 대승을 거둠으로써 절정에 달했다.[16] 1241년, 빈을 포위하고 있던 중 몽골 제국의 제2대 대칸이었던 오고타이 칸이 사망했다. 바투는 회군하여 본거지로 돌아왔지만, 왕위 계승 분쟁에 참여하기 위해 몽골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볼가 강 일대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1242년에 바투는 헝가리 진군로를 통해 후퇴했는데, 그 과정에서 페슈트를 파괴하고 불가리아를 토벌한 뒤 볼가 강 하류의 사라이에 수도를 건설했다. 그 직전에 바투와 오르다의 동생 샤이반은 오비 강과 이르티시 강을 따라 우랄 산맥 동쪽에 있는 거대한 울루스를 영지로 분봉받은 상태였다. 이로써 킵차크 칸국이 건국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3. 2. 건국과 황금기 (1242~1312)
1242년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바투 칸은 서방 원정을 중단하고 볼가 강 하류에 사라이를 건설하여 킵차크 칸국의 수도로 삼았다. 바투 칸은 루스 공국들을 복속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몽골 제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블라디미르의 야로슬라프 2세, 갈리치아의 다닐, 블라디미르의 스뱌토슬라프 3세를 포함한 모든 루스의 고위 왕자들은 바투의 우월성을 인정했다. 1245년 다닐은 바투를 직접 방문하여 충성을 맹세했다. 체르니고프의 미하일은 복종을 거부하여 1246년 처형되었다.[117]
바투의 강력한 지지 아래, 뭉케가 1251년 대칸으로 즉위했다. 이리하여 바투는 뭉케와의 우정을 통해 제국의 안정성 및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몽골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베르케 칸(1258~1266)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맘루크 왕조와 동맹을 맺는 등 킵차크 칸국의 독자성을 강화했다.
멩구 티무르 칸(1266~1280)은 러시아 정교회에 면세 특권을 부여하고 제노바, 베네치아와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등 통치 기반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몽골 제국 내 권력 다툼, 특히 툴루이 가문 내전과 베르케-훌라구 전쟁은 킵차크 칸국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3. 2. 1. 이중 칸 시대 (1281~1299)
1280년 몽케 테무르가 사망하자, 킵차크 칸국은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노가이와 코니치에 의해 몽케 테무르의 동생인 토다 몽케를 칸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몽케 테무르의 후계자들은 1287년 반란을 일으켜 사라이를 점령하고 토다 몽케 칸을 폐위시킨 뒤, 반란 주모자 중 한 명인 투라 부카를 칸으로 옹립하고 공동 통치를 시작했다.[98]
몽케 테무르의 아들 토크타는 이 쿠데타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형제들에게 쫓기다가 서쪽의 우익 통수 노가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노가이와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킨 왕족들을 유인하여 처형하고, 1291년에 노가이의 추대를 받아 칸의 자리에 올랐다.[99]
이 시기 킵차크 칸국은 바투의 후손이 지배하는 사라이의 중앙 정부(황금 호르드)와 조치의 7남 보알 가문의 수장 노가이가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노가이는 킵차크 칸국의 군주인 칸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며 바투 가문 당주들의 동향에 간섭하고, 헝가리, 불가리아로 세력을 확장하여 발칸 반도에 거대한 세력을 구축했으며, 칸의 폐립을 자유롭게 했다고 전해진다.[99]
노가이와 토크타는 분쟁 해결을 위해 일칸국의 가잔 칸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으나, 가잔은 죠치 가문 내부의 분쟁에는 불개입을 선언하여 무력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결국 1299년에 몽케 테무르의 아들 토크타 칸과 싸워 노가이는 살해되었다.[100]
3. 2. 2. 평화기 (1299~1312)
1291년 토크타가 노가이 칸을 몰아내고 칸의 자리에 올랐다.[109] 토크타는 원나라 및 일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내부적으로는 상업을 활성화하여 국가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109]
3. 3. 우즈베크 칸과 이슬람화 (1313~1341)
우즈베크 칸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킵차크 칸국 사회 전반에 이슬람화를 추진했다.[102] 그는 맘루크 왕조와 관계를 강화하고, 동로마 제국, 세르비아, 왈라키아 등과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했다. 또한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1세를 지원하여 러시아 내에서 모스크바의 세력 확장에 기여했는데,[101] 이반 1세는 우즈베크 칸에게 아첨하여 북동 루스 여러 공국의 세금을 거두어 제때 납부하는 책임을 맡는 대신 1328년에 블라디미르-수즈달 대공국의 자리를 얻어 모스크바 대공국을 건설했다. 우즈베크 칸 시대는 킵차크 칸국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3. 4. 쇠퇴와 분열 (1342~1502)
우즈베크 칸 사후, 킵차크 칸국은 내부 권력 투쟁과 흑사병의 유행으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우즈베크 칸의 장남 티니베크는 1341년부터 1342년까지 잠시 통치하다가 동생 자니베크 칸(1342~1357)에게 칸위를 넘겨주었다.[127] 자니베크는 잠시나마 국가를 안정시켰지만, 그의 통치 기간 중반부터 시작된 1340년대의 중세 흑사병은 킵차크 칸국의 경제적 몰락에 기여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129] 1345년에 크림반도를 강타한 이 역병은 이후 호라즘(1345)과 사라이(1346)를 휩쓸었으며[129] 약 8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 전염병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무역로에 발길이 끊기자 자연스럽게 칸국의 경제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자니베크 칸은 부친의 발칸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고 그 대신 서쪽에서 팽창하는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폴란드 왕국에 맞서 모스크바 대공국을 지원했다. 그는 이들을 상대로 한 몽골-루스의 합동 군사 원정을 일으켰다. 그러나 1349년에 폴란드-헝가리 군대는 갈리치아-볼히니아를 점령하여 그들의 영향권으로 편입하였다. 이로써 루스 공국들 가운데 갈리치아-볼히니아가 처음으로 킵차크 칸국의 봉신 관계에서 이탈했다. 1352년에 자니베크는 이를 보복하기 위해 루스 동맹국들과 함께 쳐들어가 폴란드 영토 대부분과 루블린을 약탈했고, 1357년 폴란드 왕 카지미에시 3세는 몽골의 침공을 막고자 킵차크 칸국에게 항복하고 매년 공물을 바치기로 합의했다.
한편 자니베크는 동쪽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차가타이 칸국을 잠시 속국으로 만들고, 캅카스를 넘어 타브리즈를 점령함으로써 1356년에 추판 왕조의 지배를 종식시켰다. 잘라이르 왕조의 항복을 받아들인 자니베크는 '몽골 제국의 3개 울루스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다'라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브리즈에서 귀환하는 길에 자니베크는 그의 아들 베르디베크에게 암살당했으며 그 사이에 킵차크 칸국은 1357년 타브리즈를 잘라이르 군주 우웨이스 1세에게 상실하고 말았다.
자니베크 칸의 사후 킵차크 칸국은 '대혼란' 시대에 들어서며 칸위 계승 분쟁이 격화되었다. 베르디베크 역시 1359년에 형제 쿨파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암살당했다. 1년 뒤인 1360년에 쿨파의 또 다른 형제 나우루즈베크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와 그의 아들들을 모조리 참살했다. 나우루즈베크는 1361년에 샤이반의 후손인 키드르에게 찬탈당했고 키드르는 다시 그의 형제 티무르 크와자에 의해 살해당했다. 티무르 크와자는 우즈베크 칸의 후손들이 권력을 되찾기 전까지 단 5주간만 킵차크 칸국을 통치했다.
이 시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1363년 블루 워터스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킵차크 칸국의 서부를 공격하여 키이우와 포돌리아를 정복했다. 이 무렵에 권신 마마이가 발호하여 압둘라를 지원했지만, 무라드와 아지즈라는 두 명의 칸이 통치하는 사라이를 점령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압둘라가 1370년에 사망하자 마마이는 무함마드 볼라크를 꼭두각시 칸으로 즉위시켰다.
1380년 쿨리코보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의 마마이는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에게 패배하며 킵차크 칸국의 권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토크타미시 칸이 킵차크 칸국을 재통일하고 모스크바를 공격하여 루스 공국들을 다시 복속시켰지만, 티무르 제국의 침입으로 킵차크 칸국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15세기 이후 킵차크 칸국은 여러 개의 독립적인 칸국으로 분열되었다.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크림 칸국, 노가이 칸국, 시비르 칸국, 카자흐 칸국 등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1502년 크림 칸국이 사라이를 함락시키면서 킵차크 칸국(이흐 칸국)은 멸망했다.
3. 5. 킵차크 칸국의 해체와 그 이후 (16세기~19세기)
모스크바 대공국은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스스로를 차르라고 칭하면서 러시아 차르국으로 거듭났고, 주변 지역에 대해 공세적이고 확장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에 의해 1552년 카잔 칸국, 1556년 아스트라한 칸국, 1582년 시비르 칸국이 정복당했다.[109]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은 러시아인들은 우랄 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시베리아로 팽창해 나갔다.
이따금 크림 타타르인들이 16세기와 17세기 초에 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 등지를 습격하여 대혼란을 야기했지만, 그들은 결정적으로 러시아를 정복하거나 모스크바를 점령하지 못했다.[109] 크림 칸국은 오스만 제국 술탄들의 비호 아래 크림 반도와 캅카스 일부에서 계속 존속하다가,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던 1783년에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합병되었다.[109] 그들은 킵차크 칸국의 후계 국가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장수한 국가 중 하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스웨덴 제국을 모두 격파하고 동유럽의 강대국으로 거듭난 러시아 차르국은 자신감을 얻어 스스로를 러시아 제국으로 칭했다. 러시아 제국은 19세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침략을 물리치고 1815년의 빈 회의 이후 약 40년 동안 유럽 최강의 군사 강국으로 군림했다. 비록 1853~1856년의 크림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에게 크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동방에서 그들은 카자흐스탄을 정복하고(1816~1854), 캅카스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으며(1857~1864), 중앙아시아의 칸국들을 합병했다(1865~1876).[109] 20세기 초에 러시아 제국의 국경선은 유럽에서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캅카스에서는 카자르 제국, 아시아에서는 청나라 및 조선과 맞닿아있었으며 그 영토 면적은 23,700,000km2에 달했다.[109]
4. 킵차크 칸국의 유산
킵차크 칸국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러시아 지역에서는 '타타르의 멍에'라고 불리는 몽골 지배의 영향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킵차크 칸국의 통치 방식, 세금 제도, 군사 제도 등은 러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성장과 중앙집권화 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킵차크 칸국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국가였다. 몽골인, 튀르크인, 슬라브인, 캅카스인 등 다양한 민족이 킵차크 칸국 내에서 공존했으며, 이슬람, 정교회, 샤머니즘 등 다양한 종교가 혼재했다. 이러한 다양성은 킵차크 칸국의 문화와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3세기 동안 몽골(또는 타타르)의 지배는 러시아인들에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전에는 '루스인'이라는 개념이 있었으나 몽골 통치 시기에 '러시아 민족'이나 '러시아 국가'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고, 따라서 결집력 있는 민족적-국가적 대응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인 귀족들은 몽골의 통치에 대해 더 일률적으로 맞설 수 있었지만 농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몽골인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정복한 동유럽 영토에 대해서 직접 통치를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페레야슬라우 공국, 키이우 공국, 포돌리아 공국은 예외였다. 몽골은 이들 공국의 토착 지배자를 아예 없애고 자신들의 직할령으로 편입시켰다. 한편 갈리치아-볼히니아, 스몰렌스크 공국, 체르니고프 공국, 노브고로드-세베르스크 공국과 같은 몇몇 루스 제후국들은 킵차크 칸국의 영향권 아래 편입되어 몽골의 압제에 고통받아야 했다. 이들은 일정 부분 자치를 인정받은 대가로 종주국인 킵차크 칸국에게 의무적으로 공물을 납부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칸이 요구할 경우에 군대까지 징발하여 제공해야 했다.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1260년 이후에 이러한 탄압의 대상에서 면제되었지만, 여전히 가혹한 수준의 세금을 매년 납부해야 했다.
역사가 찰스 할페린(Charles Halperin)은 "몽골인의 러시아 행정을 분석하려면 현존하는 자료들과 그들이 제시하는 더 큰 사료 모두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몽골 관리들에 대한 언급 중 상당수는 신뢰할 수 없는 후대의 문헌에서 등장하며, 명백히 추정적이고 선형적인(보간) 징후를 보여준다"라며 경고했다.
13세기 말 동안 여러 차례 반란이 일어나면서, 14세기 전반 동안 바스카크 제도는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그 대신 칸들은 루스 제후들로 하여금 스스로 세금을 거두어서 알아서 바치도록 했으며, 이것이 잘 시행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후 한 명은 대공으로 임명하여 총독 역할을 맡겼다. 14세기가 끝나갈 때 즈음부터는 모스크바 대공이 모든 루스 공국들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칸에게 바치는 역할을 독점함으로써 다루가들은 사라졌다. 결국 이반 3세는 1372년부터는 킵차크 칸국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을 완전히 중단했고, 1380년에는 몽골의 지배를 러시아에서 몰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몽골인들이 물러간 이후에도, 러시아인들은 몽골식 조세제도 모델을 모방하여 계속해서 세금을 징수했는데, 특히 모스크바 대공들은 바스카키를 '단쉬치키'(данщикиru)라는 새로운 관료들로 대체했다. 또한 그들은 몽골 단어인 '카즈나(Kazna, 재무부)', '카즈나치(kaznachey, 회계 담당자)', '덴가(den'ga, 돈)' 등을 채택했으며, 러시아어 "타모즈냐(таможня|세관ru)"에서 유래한 "탐가"라고 불리는 몽골식 관세 제도를 계속 사용했다. 수세기에 걸쳐 익숙해진 얌이라 불리는 우편 제도는 15세기 후반에 공식적으로 러시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몽골 시대에 러시아에서는 집단적 책임의 마을 공동체인 '크루고바이아 포루카'(круговая порука|krugovaya porukaru)가 더 흔해졌고 몽골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받았다.[130]
몽골 지배기를 거치면서, 루스인들은 몽골의 군사제도 역시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특히 16세기까지 모스크바 군대는 몽골식 안장에 몽골식 투구를 착용하고 몽골식 활과 화살로 무장한 모습을 유지했다.
5. 킵차크 칸국과 한국의 관계
킵차크 칸국은 고려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원나라의 침입과 지배를 통해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고려는 원나라의 침입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고,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며 자주성을 잃었다.[51] 원나라는 킵차크 칸국을 포함한 몽골 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고려는 킵차크 칸국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은 셈이다.
1339년부터 우즈베크 칸은 중국에 있는 주치 가문의 일원들로부터 매년 24,000개의 원나라 지폐를 받았다.[45] 이는 킵차크 칸국이 원나라와 경제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킵차크 칸국의 영향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조선은 건국 초기에 여진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여진족은 킵차크 칸국의 후예인 튀르크계 민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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